1.5∼2도 상승 시 위험지수 최대 13.5% 증가, 미래 전망도 '암울'
강원 동해안 대형산불 태반…기후변화↔산불 악순환 속 내화수림 조성 안간힘
[※ 편집자 주 = 최근 폭염과 기후 온난화로 강원에서도 이상 기후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는 주민과 관광객 불편뿐만 아니라 농작물 수급 불안으로 물가 상승, 경기 침체 등 또 다른 재앙을 예고하는 상황입니다. 연합뉴스는 강원 도내 바다와 해안, 농어촌 최일선 기후변화 현장을 점검하고, 미래 대응을 위한 실마리를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격주로 송고합니다.]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강원 동해안에는 '아까시꽃 피는 5월 이후엔 산불이 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나무들이 물을 머금어 수분 함량이 많아지고, 녹음이 짙어지는 5월 이후엔 산불이 나더라도 크게 번지지 않는다는 데서 유래한 속설이다.
달리 해석하면 '5월까지는 산불이 많이 난다'는 의미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 조심 기간이 아닌 여름철과 겨울철에도 산불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등 '산불 연중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 산불에 취약한 동해안…대형산불 다반사
산불은 주로 3∼4월에 집중해서 발생하지만, 최근 통계를 들여다보면 변화가 감지된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5∼6월 산불 발생 건수가 996건으로 전체 산불 중 17.4%를 차지했다.
봄·가을철 산불 조심 기간 외에도 산불 발생 비율이 21.4%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또한 산불 발생 일수도 2020년 136일, 2010년대 143일, 2020년도 169일로 증가 추세다.
산불은 기상, 연료가 되는 숲의 종류, 지형에 영향을 받아 확산한다.
무엇보다 산불의 확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바람'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실험 결과 바람이 없을 때는 30도의 경사면에서 산불이 분당 0.57m의 느린 속도로 확산했지만, 바람이 초속 6m로 불면 바람이 없을 때보다 무려 26배나 산불 확산 속도가 빨라졌다.
2019년 고성·속초 산불 발생 당시 최대 순간풍속이 초속 35.6m에 달해 발화지에서 7.7㎞ 떨어진 해안가까지 확산하는데 9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마치 도깨비불처럼 불똥이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현상이 곳곳에서 목격될 정도였다.
문제는 강원 동해안 지역이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지형적 특성에 따른 건조한 날씨와 함께 양간지풍이라 불리는 강풍이 불고, 인화력이 강한 소나무 단순림으로 구성돼있다는 점이다.
'지형·기상·연료'라는 산불 환경인자 3요소를 모두 갖춘 셈이다.
실제로 1991년부터 2023년 사이 발생한 대형산불 총 74건 중 절반에 가까운 36건이 강원 동해안 인근에서 발생했다.
이로 인한 피해 면적은 총 4만1천663㏊에 달한다. 이는 여의도 면적(290㏊)의 약 144배에 달하는 피해 규모다.
지난해에는 고기압 영향으로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되고 강풍이 유입되면서 3월 8일 경북 영덕 산불을 시작으로 4월 11일 강릉 산불까지 대형산불 8건이 발생했다.
가뜩이나 강원 동해안이 산불에 취약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고, 가뭄이 늘어나고, 상대습도가 낮아지게 되면 건조한 식물들은 산불의 연료가 되고, 고온 건조한 강풍은 산불을 급속하게 확산시켜 피해를 눈덩이처럼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 지구온난화로 산불 증가 악순환…꺼지지 않는 재앙
국립산림과학원이 앞으로 기후변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분석·예측한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통해 내다본 우리나라의 산불 위험성과 관련한 전망도 어둡다.
모든 기후변화 시나리오에서 산불 발생 건수와 대형산불 위험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산불위험지수는 기온이 1.5도 상승 시 8.6%, 2.0도 상승 시 13.5%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또 다른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의한 산불 발생 위험도 역시 중미래(2040∼2070년)에는 30∼100%, 21세기 말(2071∼2100년)에는 47∼158%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022년 2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산불 위험성 분석 결과 산불 발생 건수가 2030년까지 14%, 2050년까지 30%, 2100년까지 50%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기후변화가 무서운 이유는 기온 상승으로 산불 위험이 커지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산불로 인해 방출되는 이산화탄소(CO₂)가 또다시 기후변화를 가속하는 '악순환'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산불피해지와 미 피해지를 조사한 결과 소나무 숲 100㎡가 산불로 탔을 때 이산화탄소 약 54t이 배출됐다. 이는 자동차 7대가 1년간 배출하는 양과 같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야 할 산림이 오히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역효과를 내는 악순환이다.
산림이 타면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메탄(CH₄), 일산화탄소(CO), 아산화질소(N2O), 질소화합물(NOx) 등 비이산화탄소(Non-CO₂) 온실가스도 배출하고, 산불 피해 후 산림에 빛이 많이 들어와 토양미생물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토양유기물 내 탄소 배출도 가속화되어 지구온난화를 더 가속한다.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미국이나 브라질 등 다른 국가보다는 산불 발생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세계적으로 산불 위험은 이전보다는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산불 발생 원인 대부분은 실화인데, 역설적으로 보면 실화이기 때문에 교육과 계몽을 통해서 막을 수도 있다는 뜻"이라며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도록 예방교육을 의무화하고, 숲 가꾸기를 통해 산불 확산 속도를 늦추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유경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사는 "2021년부터 강원 고성에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아까시나무 등 활엽수를 이용해 산불에 강한 내화수림대 3곳을 조성,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생육 상태를 살펴보고 있는데 70∼80%가량 활착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연구사는 "강원 동해안은 산에 암반이 많고 토양이 척박해서 활엽수가 생육하기 좋은 조건은 아니지만, 토양 개량을 통해 적절한 생육 조건을 찾는다면 내화수림대 조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4/11/24 07:00 송고